64 읽음
신압록강대교와 북중 경제 밀착, 한국의 실리 대응 필요
아주경제
7~8년전 무역 데이터를 들여다보다 보면 현장의 기막힌 이면과 마주하곤 했다. 대북 제재 이전, 한중일 패션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 바로 그랬다. "한국 백화점의 번듯한 브랜드 코트, 그 안쪽 바느질을 사실 누가 했는지 아는가?"
당시 압록강을 사이에 둔 북·중 국경은 하나의 유기적인 공장이었다. 중국이 원단과 부자재를 실어 보내면, 신의주와 평양의 숙련공들이 옷을 완성해 중국으로 되보냈다. 라벨은 '중국산'이었지만 실질적인 부가가치는 북한의 손기술에서 나왔고, 그 공급망의 끝단에는 한국과 일본의 주문서가 닿아 있었다.
코로나19 봉쇄와 대북 제재로 끊겼던 이 정교한 바퀴가 다시 돌기 시작했다. 이번 주역은 '가발과 인조 속눈썹'이다. 중국 해관총서 통계에 따르면 2023년 이후 북한의 대중 수출 1위 품목은 단연 가발과 속눈썹이다 북한의 연간 대중 수출액 중 절반 이상을 이 품목이 차지할 정도다. 중국에서 원자재인 모발을 북한으로 보내면, 북한 주민들이 가공해 완제품으로 중국에 되수출한다. 유엔 안보리 제재망의 빈틈을 파고든 '신형 위탁가공 분업 모델'의 완벽한 복원이다.
동북3성의 마지막 퍼즐과 북한의 회심의 카드
이 분업이 단순한 '꼼수 무역'에 그치지 않는 이유는 양국의 절박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시진핑 정부는 일찍이 변경무역 혁신 발전 정책(국경 주민 호시무역 및 변경 가공무역 활성화 지침, 2021년)을 정비하며 국경 통상구 정비와 변경 경제협력 기반을 닦아왔다.
중국 입장에서 북한은 그야말로 '비장의 한 수'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에서 중국은 베트남이나 파키스탄, 방글라데시로 공장을 옮기며 인건비 상승에 대응해 왔다. 하지만 지리적으로 붙어 있으면서 저임금에 양질의 손기술을 갖춘 노동력은 지구상에 북한만 한 곳이 없다. 특히 바다로 나갈 길이 막혀 침체를 겪던 둥베이(동북3성) 경제에 북한의 노동력과 자원은 '기사회생의 묘약'이다. 중국에게 북한은 앓던 이를 빼주는 회심의 카드인 셈이다.
북한에게도 중국은 생존과 직결된 경제 보루다. 러시아와의 군사 밀착이 화려해 보이지만, 생필품부터 기초 산업자재, 기술과 자본의 흐름까지 실질적인 경제의 숨통을 쥐고 있는 것은 단연 중국이다. 왕복 4차선의 신압록강대교 개통은 낡은 조중우의 철로에 의존하던 물류 병목을 단숨에 뚫어버린다. 미국의 대북 경제 제재가 사실상 무력화되는 현장이 바로 이곳이다.
판이 바뀌는 국경, '패싱' 위기에 놓인 한국의 선택
정리해 보자. 첫째, 미국등 서방의 촘촘한 대북 제재는 국경 분업과 육상 인프라 확충으로 사실상 무력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둘째, 북·중 경제교류 확대는 양국 지도부의 단순한 친선 과시가 아니라 철저한 경제적 실리(중국의 비용 절감과 동북진흥, 북한의 외화 획득)에 기반한다. 셋째, 미·중 갈등의 장기화는 중국으로 하여금 북한이라는 완충지대의 경제적 가치를 더욱 높이 평가하게 만들었다.
문제는 우리다. 중국은 여전히 우리의 최대 교역국이자 핵심 공급망 파트너다. 그런데 중국의 자본·원자재와 북한의 노동력이 결합하는 강력한 '신형 북·중 국제분업' 시스템이 우리 코앞에서 안착하고 있다. 만약 우리가 이 거대한 공급망의 재편 과정에서 완벽히 배제된다면 어떻게 될까.
경제적으로는 북한이라는 미래의 생산기지와 내수 연계망을 영영 중국에 넘겨주는 꼴이 된다. 외교적으로도 한반도 문제에서 한국의 지렛대는 급격히 축소될 수밖에 없다. 화려한 안보 수사에만 취해 있을 때가 아니다. '압록강의 다리'가 열리며 쏟아져 들어갈 돈과 물류의 흐름을 직시해야 한다. 북·중 경제관계 복원이 던지는 경제적 파장을 냉정하게 계산하고, 우리가 파고들 통상 공간을 선제적으로 찾아 나서는 유연하고 능동적인 전략이 절실한 시점이다.
필자 이력
▲한중경제연구소 대표(현) ▲ 국립외교원 연구원 ▲ 국제무역연구원 연구위원 ▲ 코트라 중국조사담당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