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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 EBS 출연, 세월호 보도와 언론 철학 회고
미디어오늘
손석희는 4월16일 당시를 떠올리며 “뉴스에 다 전원 구조라고 나오고 있었고,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당황한 것은 저나 시청자나 마찬가지였다”고 말한 뒤 “정말 문제가 있다고 느꼈던 것은 그날 저녁 이후였다”고 말했다. 당시 실종자 가족은 JTBC와 인터뷰에서 “방송과는 다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지금 방송이 전부가 아니다. 방송에서 조명탄을 환하게 밝히고 구조 장면을 내보내고 있을 당시에 구조를 못하고 대기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손석희가 보도담당 사장이자 메인뉴스 앵커였던 2014년, JTBC는 세월호 참사를 지속적으로 보도하며 ‘어젠다 키핑’에 나섰고, 수년간 신뢰도·영향력 1위 언론사를 기록했다. 당시 현장 취재만 521일간 이어졌다. 손석희는 당시를 회상하며 “일주일, 열흘이 지나면서, 보도의 강도가 옅어졌고, 하필 그때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하게 됐다”며 “그 뉴스가 넘쳐나게 되면 세월호는 보도가 한 꺼풀 꺾이는 게 아닐까, 그게 두려웠다.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그해 4월25일, 오바마는 서울에 왔고, 손석희는 팽목항으로 내려간 이유였다.

이날 방송에선 1987년 이후 방송민주화 투쟁에 대한 이야기도 담겼다. 손석희는 입사 3개월 차였던 1984년 봄을 떠올렸다. “첫 뉴스에 들어갔다. 대통령 관련 뉴스가 3분 동안 2분 정도를 차지하길래, 절반 이상 잘라내고 뒤에 있던 다른 뉴스를 붙여서 라이브로 뉴스하고 나왔더니 사달이 났다.” 손석희는 “니가 뭔데 맘대로 대통령 뉴스를 줄이느냐”며 혼이 났다.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상식적으로 정상은 아니었다. 첫 뉴스 방송이 나를 많이 깨우쳐줬다”고 말했다.
그는 “6월 항쟁이 마련해준 토대가 굉장히 소중했던 것이고, 그 토대에서 언론은 ‘우리가 무엇을 잘 못했던 것인가’, 새삼스러운 자각을 하게 되는 시기였다”고 설명했다. 1989년 MBC는 공정방송 투쟁에 나섰다. 언론노동자들은 ‘공정방송’ 리본을 달고 출연하기로 결의했다. 당시 주말 뉴스 앵커였던 입사 5년 차 손석희가 주목을 받았다. “회사에선 방송에서 제외시킨다는 지침을 이미 내렸기 때문에 손석희가 다느냐 안 다느냐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첫날(토요일)은 리본을 재킷 안쪽에 달아서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밤잠을 설친 손석희는 다음날(일요일) 생방송에서 리본을 재킷 바깥에 달고 나갔다. 그날의 경험은 “선택의 순간마다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손석희는 2000년부터 2013년까지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통해 아침 시사라디오의 새 지평을 열었고, 이 기간 동안 4600여명을 인터뷰하며 13년 연속 청취율 1위를 기록했다. 시사주간지 시사IN의 언론 신뢰도 조사에서는 2007년부터 올해까지 20년 연속 1위를 기록했다. 2023년 JTBC를 떠난 뒤 일본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수개월 전 귀국, MBC 라디오로 복귀해 ‘손석희의 12시’를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