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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굿뜨래 10품’ 자랑하는 부여군, 왜 공주 밤·논산딸기에 밀리나
투어코리아
딸기와 밤, 수박, 멜론, 방울토마토 등 이름만 들어도 풍성한 농특산물이 줄을 잇는다.
지역 대표 브랜드인 ‘굿뜨래 부여 10품’은 부여 농업의 자부심이자 경쟁력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토록 풍부한 농업 자원을 갖춘 부여가 정작 시장에서는 왜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하는가.
왜 부여 밤보다 공주시에서 생산한 공주 밤이 먼저 떠오르고, 부여에서도 딸기가 생산되지만 전국적인 딸기 브랜드를 이야기할 때는 논산이 먼저 거론되는가.
부여군의회 조덕연 의원이 지난 12일 5분 발언에서 던진 질문은 단순한 농업정책 비판이 아니다.
부여 농업이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온 생산 중심의 사고방식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농산물을 잘 키우는 것과 농산물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부여는 좋은 농산물을 생산할 역량을 갖췄다. 그러나 생산 경쟁력이 브랜드 경쟁력으로, 다시 농가소득 증대로 이어지는 구조가 충분히 작동하고 있는지는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농민은 땀 흘려 농산물을 키우는데, 시장에서 그 이름값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면 문제는 생산 현장보다 정책과 유통, 브랜드 전략에 있을 수 있다.
■ ‘10품’이라는 풍요 속에 가려진 대표 상품의 부재
‘굿뜨래 부여 10품’은 분명 부여 농업의 소중한 자산이다.
다양한 작목은 농업 기반을 넓히고 시장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열 가지 품목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일 수는 없다.
문제는 그 열 가지가 각각의 경쟁력을 키우는 동시에, 부여를 대표할 핵심 상품을 만들어내고 있느냐는 데 있다.
모든 품목을 지원한다는 명분 아래 예산을 나누고 사업을 반복하는 데 그친다면, 정작 전국 시장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할 전략 품목은 만들어지기 어렵다.
사업은 많아도 시장을 움직이는 대표 상품이 없고, 지원은 이어져도 소비자가 먼저 찾는 브랜드가 없다면 정책의 방향을 되돌아볼 때다.
조 의원이 지적한 ‘N분의 1식 지원’의 한계도 여기에 있다. 모든 작목에 똑같이 투자하는 것이 공정한 지원인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시장 경쟁력을 키우는 데 반드시 효율적인 방식은 아니다.
물론 핵심 작목 육성이 다른 농가와 품목을 소외시키는 결과로 이어져서도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지원을 무조건 줄이거나 한 품목에 몰아주는 것이 아니라, 품목별 경쟁력을 정확히 분석하고 성장 가능성이 큰 분야에 전략적으로 투자하는 일이다.
열 가지를 가진 것이 강점이 되려면, 그중 무엇으로 시장을 선도할 것인지부터 분명해야 한다.
■ 논산은 딸기를 키우고, 부여는 무엇을 키웠는가
인근 논산의 딸기 산업은 부여가 되짚어볼 대목이다.
논산시는 딸기를 중심으로 생산 기반과 재배기술, 품종 개발, 유통, 수출, 축제 등을 연결하며 지역의 대표 이미지를 강화해 왔다.
농산물 하나를 생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의 이름과 산업을 함께 키우는 전략이다.
부여군 역시 딸기를 생산한다. 하지만 같은 작물을 재배한다고 같은 브랜드 경쟁력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소비자가 기억하는 이름, 차별화된 품질, 안정적인 공급체계, 구매할 수 있는 유통망, 지역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콘텐츠까지 갖춰야 비로소 시장에서 차이가 만들어진다.
부여가 논산을 무조건 따라 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논산의 사례에서 배워 부여만의 품종과 재배기술, 상품성, 유통전략을 구축해야 한다.
농업정책은 생산량을 늘리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된다.
누가 소비자를 확보하고, 누가 시장을 선점하며, 누가 농산물의 부가가치를 지역에 남기는지까지 고민해야 한다.
■ 부여 밤의 자존심, 생산량만으로 지킬 수 없다
더 뼈아픈 대목은 부여 밤이다.
부여가 오랜 생산 기반과 농업 역량을 갖추고 있음에도 소비자에게는 ‘공주 밤’이라는 이름이 더 선명하게 각인돼 있다는 것이 조 의원의 문제의식이다.
브랜드는 생산량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소비자가 기억할 만한 상품과 품질, 일관된 마케팅, 가공산업, 유통망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밤을 수확해 원물로 판매하는 데 머문다면 가격과 유통환경 변화에 따라 농가의 수익성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반면 밤을 활용한 가공식품과 간편식, 체험 프로그램, 관광 콘텐츠를 개발하고 지역 축제와 연계한다면 하나의 농산물이 여러 산업의 수익원으로 확장될 수 있다.
부여 밤의 경쟁력을 되살리려면 ‘얼마나 생산했는가’만 물어서는 안 된다.
부여 밤만의 차별화된 상품이 있는지, 소비자가 다시 찾을 이유가 있는지, 농가와 지역기업이 가공과 유통에서 부가가치를 확보하고 있는지를 함께 물어야 한다.
공주 밤에 대한 비교도 감정적인 지역 경쟁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 객관적인 생산·유통·브랜드 자료를 토대로 부여가 부족한 부분을 찾아내고, 이를 정책으로 메우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부여 밤의 위기는 이름을 빼앗긴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름의 가치를 키우는 전략이 충분했는지에 대한 질문에 있다.
■ ‘굿뜨래’라는 이름값, 이제는 시장에서 증명해야
부여 농업의 미래를 이야기하면서 ‘굿뜨래’를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브랜드는 이름을 알리는 홍보물이나 포장지에 붙이는 상표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소비자가 굿뜨래를 믿고 선택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선택이 반복 구매로 이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엄격한 품질 관리와 일관된 상품성, 유통 과정의 신뢰, 차별화된 마케팅이 뒷받침돼야 한다.
굿뜨래라는 이름을 달았다는 이유만으로 경쟁력이 보장되는 시대는 아니다.
소비자는 브랜드의 역사보다 자신이 구매한 상품의 품질과 가격, 만족도를 먼저 판단한다.
부여군은 굿뜨래 브랜드의 품질 기준과 관리체계를 재점검하고, 시장에서 경쟁력이 검증된 상품이 더 큰 가치를 인정받도록 유통·판매 전략을 강화해야 한다.
온라인 판매와 수출시장 개척, 공동 선별·포장 체계 개선 등 생산 이후의 과정에도 정책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브랜드의 최종 성적표는 홍보 실적이 아니라 시장의 선택이다. 그리고 그 성적표는 농업인의 소득으로 확인돼야 한다.
■ 이제 부여군이 답할 차례다
조덕연 의원의 5분 발언이 의미를 갖는 이유는 부여 농업의 문제를 농민의 노력 부족에서 찾지 않았다는 데 있다.
농업인들은 이미 생산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렇다면 행정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부여군은 먼저 주요 작목별 생산·유통·판매 구조와 브랜드 경쟁력을 객관적으로 진단해야 한다.
다음으로 딸기와 밤을 비롯해 부여가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전략 품목을 선정하고, 연구개발과 시설 현대화, 가공, 유통, 수출을 연계한 중장기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성과를 평가하는 기준도 달라져야 한다. 지원사업이 몇 건 진행됐는지, 예산을 얼마나 집행했는지만으로는 부족하다.
농산물의 판매가격이 개선됐는지, 농가소득이 증가했는지, 브랜드의 소비자 인지도가 높아졌는지, 가공·유통을 통해 지역에 남는 부가가치가 커졌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농업인과 생산자단체, 유통업계, 가공기업의 목소리를 함께 반영하는 것도 필수다.
행정이 일방적으로 주력 품목을 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현장의 경험과 시장 데이터를 바탕으로 전략을 세워야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
‘굿뜨래 부여 10품’은 버려야 할 자산이 아니다. 오히려 제대로 키워야 할 경쟁력이다. 다만 열 가지 품목의 명성을 나열하는 데 만족해서는 안 된다.
각 품목의 강점을 살리면서 부여를 대표할 상품을 키우고, 그 성공이 다른 농산물의 가치까지 끌어올리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부여 농업의 목표는 더 이상 ‘많이 생산하는 지역’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좋은 농산물을 생산하고, 제값에 판매하며, 그 이익이 농업인에게 돌아오는 지역이어야 한다.
조 의원이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은 결국 부여군의 정책과 예산에서 나올 것이다. 부여 밤의 이름값을 되찾고, 부여 딸기의 경쟁력을 키우며, 굿뜨래를 소비자가 먼저 찾는 브랜드로 만드는 일은 구호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농업정책의 우선순위를 바꾸고, 시장에서 성과를 검증하며, 결과에 책임지는 행정이 뒤따라야 한다.
굿뜨래 10품을 자랑하는 부여가 이제는 물어야 한다. 우리는 농산물을 생산하는 데 만족하고 있는가, 아니면 농산물의 가치를 키우고 있는가.
부여 농업의 미래를 가를 질문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