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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현정, 지루함은 고급스러운 것, 무탈한 일상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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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현대인의 일상에서 '심심함'은 거의 사라진 감각에 가깝다. 스마트폰을 열면 볼 것이 넘쳐나고, 빈 시간이 생기면 어딘가를 채워야 할 것 같은 불안감이 찾아온다. 아무 일도 없는 하루는 왠지 '낭비한 하루'처럼 느껴지고, 지루함은 어서 벗어나야 할 불쾌한 감각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아무 일도 없고 지루하고 심심한 하루. 우리는 이것을 너무 쉽게 '별 볼 일 없는 날'로 치부하고 있는 건 아닐까.

배우 고현정이 과거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꺼낸 말은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새삼 마음에 울림을 전한다. 수십 년을 치열하게 살아온 배우가 전한 '일상의 무탈함'에 대한 가치. 어쩌면 많은 이들이 잊고 있는 평범한 행복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만드는 그 이야기는 아직도 온라인 등을 통해 다양한 클립 영상으로 회자되고 있다.
고현정은 2024년 11월 27일 방송된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바 있다. 당시 그는 15년 만의 예능 토크쇼에 나서면서 그간 대중들에게 전하지 못했던 다양한 이야기를 밝혔다. 이 가운데 고현정은 과거로 돌아가고 싶냐는 질문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단호하게 답했다. 화려한 외면 뒤, 부단히 버텨온 시간들에 다소 버거움도 있었다는 것이 은연중에 전해졌다.

이어진 이야기는 더 인상적이었다. '미래에 한 순간을 목격하고 다시 돌아올 수 있다면 몇 살 때 모습을 보고 싶냐'는 질문에 고현정은 "별로 궁금하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바깥에 잘 안 나가고 사람들을 많이 안 만나면서 머릿속으로 생각을 많이 굴려봐서, 다 쓸데없는 거더라"라고 말했다.

이윽고 과거로도 미래로도 가지 않겠다고 답한 그가 꺼낸 한마디는 많은 이들의 마음을 건드렸다. 고현정은 "그냥 오늘 아무 일도 안 일어나면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거기에 덧붙여 "(무탈한 게) 행복한 거더라. 지루한 게 제일 고급스러운 거다. 심심한 거, 그게 제일 고급된 거다"라고 전했다. "심심할 수 있기가 힘들다. 그렇지 않냐"고 말하는 고현정의 말에는 삶의 평범함에 대한 진가를 꿰뚫어 보는 철학을 엿볼 수 있었다.

이런 말은 비슷한 결로 앞서도 등장한 바 있다. 2023년 유튜브 채널 'VOGUE KOREA'에 출연한 고현정은 '아름다운 여자'를 묻는 질문에 "속이 조용하고 약간의 생활적인 심심함도 있고, 화장도 필요한 거 한두 개 그 정도만. 그리고 지갑에 후배나 선배에게 카스텔라나 커피 한 잔 정도 살 수 있는 여윳돈이 있는 그런 여자들이 아름다운 것 같다"고 답했다. 여기서 언급한 '생활적인 심심함'도 결국 같은 맥락이다. 꾸밈없고 과하지 않은 적당한 일상. 고현정이 언급하는 진짜 아름다운 삶은 특별함이 아닌 보통의 삶에 가까운 것으로 풀이된다.
많은 사람이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해야 의미 있는 하루라고 느낀다. 특별한 경험, 눈에 띄는 성취, 기억에 남을 이벤트. 소셜미디어는 이런 심리를 더욱 부추긴다. 남들의 멋진 순간이 실시간으로 흘러 들어오고, 그것과 비교된 자신의 평범한 하루는 왠지 모자란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난 하루'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우리는 잃고 나서야 알게 된다. 몸이 아프고 나서야 건강한 날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깨닫는다. 가까운 사람을 잃고서야 평소에 나누던 사소한 대화가 얼마나 따뜻한 것이었는지 실감한다. 일이 꼬이고 관계가 틀어지고 나서야, 아무 문제 없이 조용히 흘러가던 그날들이 사실은 행복이었음을 떠올린다.

'심심할 수 있다'는 것은 말 그대로 여유가 있다는 뜻이다. 급하게 해결해야 할 위기도 없고, 감당하기 힘든 걱정도 없고, 숨 막히게 쫓기는 상황도 아닌 상태. 이 상태를 마냥 '지루하다'고 느끼는 건 아직 그 소중함을 모르기 때문일 수 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더 나은 자신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달리다 보면 지금 발을 딛고 서 있는 이 자리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행복은 도착해야 할 어딘가에 있는 게 아니라, 아무 일 없이 흘러가는 이날 이 순간에 이미 와 있는지 모른다.
머리로는 알아도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평범한 일상이 소중하다는 걸 알면서도, 막상 그 한복판에 있으면 지루하고 답답하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 평범함의 가치를 조금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까.

감사 일기를 써보는 것이 고전적이지만 효과적인 방법이다. 거창한 일을 적으려 하지 않아도 된다. 이날 마신 커피가 맛있었다, 날씨가 맑았다, 출근길에 음악을 들었다. 이런 사소한 것들을 매일 3가지씩 적다 보면, 하루하루가 얼마나 작은 좋은 것들로 채워져 있는지 보이기 시작한다.

'멍때리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 고현정이 말한 '심심함'은 자연스럽게 오는 것이 아니라, 요즘 시대에는 의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이 시간이 처음에는 어색하고 불안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익숙해지면 오히려 머릿속이 정리되고 마음이 고요해지는 경험이 된다.

이와 맞물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연습도 필요하다. 식사할 때 음식의 맛에 집중해 보거나 걸을 때 주변 풍경을 천천히 둘러보거나, 대화할 때 상대방의 말에 온전히 귀를 기울이는 것. 이러한 노력 속에서 일상의 행복에 대해 집중할 수 있겠다.
고현정은 1989년 미스코리아 '선' 출신으로 연예계에 입문했다. 이후 드라마 '모래시계'를 통해 국민 배우의 반열에 올랐다.

1995년 결혼과 함께 연예계를 잠시 떠났던 그는 2003년 이혼 후 2005년 SBS 드라마 '봄날'을 통해 복귀했다. 이어 2009년 배우로서의 또 다른 정점을 찍었다. MBC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미실 역을 맡아 시청자들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이 작품으로 MBC 연기대상을 수상했고, 이듬해 2010년에는 SBS 드라마 '대물'에서 최초의 여성 대통령 역을 맡아 SBS 연기대상까지 거머쥐며 2년 연속 수상 기록을 세웠다.

수십 년의 활동 속에서 그의 길이 늘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SBS 드라마 '리턴'에서 중도 하차하며 여러 루머가 불거져 이미지 타격을 받기도 했다. 2024년에는 갑작스러운 건강 악화로 지니TV 오리지널 드라마 '나미브' 제작발표회에 당일 참석하지 못하는 일도 있었다.

이후 건강을 회복한 그는 2025년 SBS 드라마 '사마귀: 살인자의 외출'에 출연했다. 고현정은 극 중 연쇄살인마 정이신 역을 맡아 강렬한 존재감을 발휘하며 대한민국 대표 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시 한번 보여줬다.

지난달 7일에는 다비치 강민경의 유튜브 채널 '걍밍경'에 출연해 건강 이상 이후 주치의 권고에 따라 약 복용과 함께 회복에 집중하고 있다는 소식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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