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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교위 역사 비중 확대, 과목 신설 논의 결론 없이 차기 이월
아주경제국가교육위원회(이하 국교위)가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의 근현대사 분량 확대와 고등학교 선택과목 신설을 골자로 한 교육부의 교육과정 개정 요청을 두고 팽팽한 설전을 벌였다. 교육 현장의 목소리와 절차적 정당성을 내세운 반대 의견이 거세게 맞부딪치면서, 국교위는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차기 회의에서 심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국교위는 11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국교위 회의실에서 제6차 회의를 개최하고, 교육부가 제출한 ‘중·고등학교 역사 교육과정 개정 요청서’를 심의했다. 이날 회의에는 차정인 국교위원장을 비롯해 최수진 사무처장, 반상진 위원(국교위 인재강국 특위 위원장), 김영도 위원(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회장) 등 위원들과 교육부에서 최은옥 차관, 김영진 학교정책관 등이 참석해 1시간 반이 넘는 시간 동안 격렬한 토론이 이어졌다.
교육부, “역사 왜곡 대응과 비판적 사고력 함양 위해 개정 절실”
이날 논의의 발단은 교육부가 요청한 세 가지 안건이었다. 주요 내용은 △중학교 역사 교과서 내 근현대사(개항~현대) 분량을 현행 20%에서 30% 이상으로 확대 △중학교 사회 교과군(사회·역사·도덕) 교육 시간 확보 △고등학교 선택 과목으로 「역사콘텐츠 비평분석」 신설 등이다.
제안 설명에 나선 김영진 교육부 학교정책관은 “최근 온라인과 유튜브 등에서 왜곡된 역사 자료가 무분별하게 유포되면서 학교 수업 자체를 어렵게 만들고 청소년의 역사 인식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며 개정의 필요성을 강하게 피력했다. 김 정책관은 “학생들이 역사 콘텐츠가 어떤 근거에 의해 제작되었는지 제작자의 관점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역사콘텐츠 비평분석」 과목을 신설하고자 한다”며 “다원적 관점에서 역사 자료의 출처를 검증하고 교차 분석하는 과정은 민주시민으로서 성장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중학교 근현대사 비중 확대에 대해서도 “현재 중학교 역사 교과서의 근현대사 비중은 전체 20개 대단원 중 4개(20%)에 불과해 중요한 역사적 사실이 대거 누락되어 있다”며 “맥락적이고 깊이 있는 역사를 배우기 위해서는 한국사 내 근현대사 비중을 반드시 늘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상임위원 간 이견 속 “시수 확대, 학교 자율성 침해이자 타 교과 형평성 어긋나”
하지만 국교위 상임위원들 사이에서부터 교육부 안을 그대로 수용하기 어렵다는 신중론과 반대론이 충돌했다. 특히 중학교 역사 시수 및 분량 조정 문제를 두고 타 교과와의 형평성 논란이 도마 위에 올랐다. 김경회 상임위원은 “중학교 역사 교과서의 근현대사 분량을 늘리고 역사 시수를 유지하거나 확대하겠다는 교육부의 발상은 학교의 자율성을 증감할 수 있는 대원칙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김 상임위원은 “특정 교과의 시수를 늘리면 다른 교과를 줄여야 하는데, 이는 현재 중3·고3 학생들에게 적용되기도 어렵고 교과 간 형평성 측면에서도 적절하지 않다”며 재논의를 제안했다. 이에 대해 이광호 상임위원 역시 초기에는 “교육부의 개정안을 원안 그대로 수용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밝히며 논의의 성급함을 짚었다.
「역사콘텐츠 비평분석」 신설 두고 격돌… “융합교과 대안” vs “현장 교사 저항·부담 가중”
이날 회의에서 가장 첨예한 대립이 이어진 대목은 고등학교 「역사콘텐츠 비평분석」 과목 신설 안건이었다. 상임위원들은 과목 신설의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이를 역사과 단독 과목이 아닌 사회·윤리 등을 아우르는 ‘융합 선택 과목’으로 수정하자는 제안을 내놨다.
이광호 상임위원은 “미디어 환경이 다양해진 인공지능(AI) 시대에는 텍스트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사회적 현상들이 많으므로, 역사와 사회를 함께 이해할 수 있는 융합 교과로 수정해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김경회 상임위원도 “정보 왜곡이나 편견, 차별의 문제는 역사뿐 아니라 지리적, 윤리적 내용도 포함된다”며 “고등학교 과목 수가 지나치게 늘어나는 것은 부담스럽지만, 사회교과군의 융합선택과목 형태로 수정 제안한다”고 뜻을 모았다.
하지만 일선 교육감들과 학부모·교사 출신 위원들의 반발은 거셌다. 강은희 위원(대구시교육감)은 “교과를 신설하는 것은 지나치게 무책임해 보인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강 위원은 “이미 국어교과의 직무의사소통이나 언어생활탐구 등에서 미디어 리터러시가 충분히 다뤄질 수 있는데, 깊이 있는 연구 없이 표면적인 분석만을 위한 과목을 신설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며 “현재도 사회 선택과목이 유난히 많은 상황에서 교과를 또 신설하면 학교 현장의 정상적 운영이 어렵다”고 비판했다.
윤건영 위원(충북교육감) 역시 ‘수시 부분 개정’의 위험성을 우려했다. 윤 위원은 “교육과정 개편은 충분한 준비를 거쳐야 하며, 개정 시 교과서 개발과 인증 심사 등에 최소 3~4년이 걸린다”면서 “지금 이 시점에 역사콘텐츠 비평 과목이 그렇게 시급한지 엄중히 고민해야 한다. 전문적인 검토와 담론이 부족한 상태에서 통과시키면 학교 현장에서 누가 지도하고 책임질 것인가”라며 논의 중단을 요구했다.
학교 현장의 공급자인 교사들의 전문성과 수용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김주성 위원은 “융합교과를 만드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워야 한다”며 “과거 총장 시절 경험해보니 교과의 정체성이 모호해지고 전문 교사를 세우기 어려워 성공하지 못했다”고 실무적 한계를 짚었다. 안상현 위원은 “교육은 경로의존성이 강해 교과서만 변해도 저항이 많다”며 교사들이 겪을 다과목 지도 부담과 평가 방식의 어려움을 우려했다. 김영도 위원(전문대교협 회장) 또한 “비평과 분석은 전문가의 영역인데 일선 교사들이 가르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의문”이라며 “자칫 학생들에게 역사에 대한 오류와 편향된 인식만 심어줄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역사 교육의 강화를 위해 원안의 취지를 살려야 한다는 소수 의견도 존재했다. 학부모 대표성을 띈 전은영 비상임위원은 “최근 학부모들 사이에서 역사 교육에 대한 위기의식과 요구가 매우 높아졌다”며 “융합 교과로 뭉뚱그려지면 역사 교육만의 차별성과 맥락이 사라지므로, 역사 토론을 활성화할 수 있도록 역사 교육의 정체성을 부각하는 방향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차정인 국교위원장 “글로벌 스탠다드 비해 근현대사 부족…속도 조절하며 절차 밟을 것”
위원들 간의 설전이 공전하자 차정인 국교위원장은 글로벌 기준을 언급하며, 이날 논의의 성격을 규정하고자 했다. 차 위원장은 “해외 사례를 보면 근현대사 비중이 35%에서 60%에 달하고, 독일의 경우 고교 과정에서 압도적인 다수 비중으로 현대사를 가르치며 세계시민을 길러낸다”며 “이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20%는 너무 적다. 단편적 사진과 나열 위주의 서술에서 벗어나 맥락적 서술이 보완되어야 한다”고 수치 확대의 당위성에 공감했다.
차 위원장은 또한 “우리나라 역사가 진보와 보수의 전쟁처럼 갈등 관계로 비치는 면이 있다”며 “산업화와 경제 발전사 서술이 빈약해 아이들이 자부심을 가질 맥락이 없다는 상임위원들의 지적에도 공감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차 위원장은 현장의 혼란과 우려를 반영해 결론을 서두르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차 위원장은 “교육적 필요성이 있고 어렵더라도 해야 할 과제이지만, 교육 현장의 과목 편성 어려움과 학부모들의 우려가 엄존하는 만큼 서둘러서는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차 위원장은 “「역사콘텐츠 비평분석」 과목 및 융합 과목 수정안에 대해서는 전문위원회와 모니터링단의 정식 의견 개진과 조율 절차를 거치지 않았으므로, 절차를 정확히 밟아 다음 회의에서 다시 논의하도록 하겠다”고 선언하며 안건 심의를 차기 회의로 이월시켰다.
한편, 국교위는 회의 이후 별도 문자 공지를 통해 이날 논의한 사항을 바탕으로 다양한 측면을 고려해 다음 회의에서 추가 심의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