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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평양냉면 1위 우래옥, 필동면옥 전문가 10인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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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냉면을 처음 먹은 사람의 반응은 대부분 비슷하다. "이게 다야?" 그런데 두 번, 세 번 먹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집 생각이 난다.
최근 동아일보가 평양냉면 마니아와 음식 전문가 10인을 대상으로 서울 최고의 평양냉면집을 조사했다. 해당 순위를 살펴보기에 앞서 평양냉면의 역사적 유래와 변천 과정을 먼저 짚어본다.
평양냉면의 시작은 고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평양의 찬샘골(현 동대원구역 랭천동) 주막집에 얹혀 살던 달세라는 사위가 메밀 반죽을 국수틀에 눌러 뺀 것을 삶아 찬물에 헹구고 동치미 국물에 말아 먹은 것이 시작이었다. 이것이 곡수(穀水)라 불리며 평양성 안으로 퍼져나갔고, 훗날 평양냉면으로 불리게 됐다.
문헌에 냉면이 처음 등장하는 건 1558년이다. 조선 중기 이문건의 묵재일기 1558년 4월 20일 조에 "낮잠을 자다가 일어나 냉면을 먹었더니 발바닥이 차갑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1849년에 쓰인 동국세시기에서는 냉면을 동짓달(음력 11월)의 시식으로 소개한다. 평안도 사람들이 한여름에 밀을 수확해 만두와 국수를 만들어 먹고, 늦가을에 추수한 메밀로 겨울 냉면을 만들어 먹었기 때문이다. 냉면이 겨울 음식이었던 데는 이런 이유가 있었다.
냉면이 서민 음식으로 자리를 잡은 건 1890년대다. 조선의 마지막 궁중 최고 음식 책임자였던 안순환이 조선 멸망 후 1903년 서울 세종로에 명월관이라는 고급 요릿집을 열며 고종 황제가 즐겨 먹던 배동치미 냉면을 메뉴에 올렸다. '고종이 드시던 냉면을 이제 명월관에서도 먹을 수 있습니다'라는 광고가 인기를 끌었고, 이후 평양 장인들이 일제강점기에 대거 서울로 진출하며 냉면은 수도의 음식으로 뿌리를 내렸다. 당시 경성에서는 제빙기 얼음이 시장에 유통되면서 냉면이 사실상 최초의 배달 음식으로 자전거 배달까지 됐고, 냉면 식당임을 나타내는 장대 종이 '장대이'는 1980년대 중반까지도 서울 여름의 풍경이었다.

2016년 탈북한 태영호 전 공사는 "남한의 평양냉면은 너무 달아서 이북 맛이 나지 않는다"고 평했다. 북한에서는 맛간장과 식초를 넣고 간을 상당히 강하게 해서 먹는다. 한국의 평양냉면이 슴슴하고 밍밍하다는 인식은 실향민들의 기억과 경험이 분단 이후 서울의 환경과 결합해 탄생한 맛이 굳어진 것이다.
공동 1위 우래옥 — 소가 음메~ 하는 육수
서울 중구 우래옥은 대한민국 평양냉면 역사를 상징하는 육향파 종가다. 1946년 서북관으로 시작했지만 6·25전쟁 휴전 후 재개업하며 우래옥으로 상호를 바꿨다. 한우 살코기만 오랜 시간 우려낸 진한 육수가 시그니처다. 평양식으로 동치미 국물을 섞어 쓰다가 동치미가 빨리 상해 고기 육수로 전환했다. 메밀 함량 70~80% 면은 부드러우면서도 툭툭 끊긴다. 가격은 최근 1만8000원으로 올랐다. 선정위원 6명이 언급했고 그중 2명이 1위로 꼽았다. "초심자에게는 강렬한 입문을, 마니아에게는 결국 돌아오게 만드는 종착역 같은 힘을 지녔다" "소고기에서 낼 수 있는 가장 좋은 향을 육수에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 선정위원은 "최근 메밀면이 뭉쳐서 나오는 경우를 더러 봤다"고 아쉬움을 덧붙였다.
공동 1위 필동면옥 — 선주후면의 성지
언급 횟수는 5회로 우래옥보다 적었지만 2명이 1위, 1명이 2위, 1명이 3위로 꼽으며 공동 1위에 올랐다. 고춧가루와 파, 얇게 썬 청양고추를 뿌려낸 의정부 계열 핵심 식당이다. 계열 본산인 의정부 평양면옥 장녀가 운영한다.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섞어 차갑게 식힌 육수는 "정화수 같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분을 섞어 찰지고 목넘김이 좋은 면발, 팬층이 두터운 냉수육도 이 집의 자산이다.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모던하다" "술 마시기에 최적의 장소" "일관된 육수 온도와 면의 질감을 보여주는 영원한 강자"라는 평을 받았다. "청결도와 신선함이 아쉽다"는 의견도 있었다.
2위 을지면옥 — 낙원동 시대에도 굳건한 전통

공동 3위 진미평양냉면 — 강남권 평정 하이브리드
서울 강남구에서 개업한 지 10년 만에 1세대 노포를 위협하는 강자로 성장했다. 임세권 대표는 의정부 평양면옥(3년)과 장충동 평양면옥(17년) 주방을 모두 거쳤다. 양 계보의 장점만 흡수해 직관적으로 맛있는 한 그릇을 낸다. 촉촉담백의 정석인 만두도 인기다. 음악평론가 김작가는 이곳 냉면을 가수 잔나비에 비유하며 "1980년대 전통 발라드 문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듯, 노포의 장점을 흡수하면서 현대적인 입맛까지 사로잡았다"고 했다. "수영장에서 밥 먹는 듯한 어수선한 분위기 때문에 면식에 집중하기 힘들다"는 지적도 있었다.
공동 3위 의정부 평양면옥 — 계보의 시작이자 전설
의정부 평양면옥은 대한민국 평양냉면의 한 축인 의정부 계열 본가다. 1·4후퇴 때 월남한 고 홍영남·김경필 씨 부부가 1969년 개업한 뒤 필동면옥, 을지면옥, 잠원동 평양면옥의 뿌리가 됐다. 북한에 돌아갈 줄 알고 경기 연천군에 자리를 잡았다가 12년 뒤 의정부로 이전했다. 소와 돼지고기를 함께 삶아 맑은 육수를 낸다. "약간 우유비릿하고 고소한 육수 맛이 일품" "단정하지만 투박하고 힘 있는 원조의 맛"이라는 평을 받았다.
4위 정인면옥 광명점 — 가성비와 맛, 두 마리 토끼
2012년 경기 광명시장에서 출발했다. 현재 대표가 인수해 레시피를 조정·보완한 뒤 독립된 길을 걷고 있다. 매일 맷돌로 제분한 메밀을 손으로 반죽해 순도 80% 면을 만들고, 육수는 양지머리와 사태로만 낸다. 가격은 1만2000원. 김작가는 "심플하고 반복적인데 계속 먹어도 질리지 않고 따뜻한,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페일 블루 아이즈 같다"고 했다.
5위 장충동 평양면옥 — 맹물인가 싶다가 올라오는 고기 향
1985년 창업주 변정숙 할머니가 문을 연 장충동 계열 본점이다. 본점은 큰아들, 논현점은 둘째 아들이 맡았다. 맛있게 심심한 육수에 오이 고명이 어우러져 청량감을 극대화한다. 의정부 계열과 우래옥의 중간 맛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본점 대표는 "레시피는 원형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변하지 않는 맛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6위 서령 — 강원도에서 강화도, 그리고 서울
서울 중구 서령의 뿌리는 2001년 강원 홍천군에서 시작된 장원막국수다. 2019년 강화도로 터를 옮겨 강화 장원막국수를 열었고, 2021년 평양냉면으로 종목을 바꾸며 서령으로 상호를 변경했다. 강화도에서 보기 드문 오픈런 식당으로 이름을 알리다 2024년 5월 서울로 이전했다. 2년 만에 전국구 성지로 성장했다. 온도와 습도에 따라 매일 제면 공정을 미세하게 조정하고 한우 사태로 육수를 낸다. "순면 100%를 추구해 온 고집이 꽃을 피운 것 같다" "밍밍함과 슴슴함 사이 간을 정확히 포착한 육수가 일품"이라는 평. "열무 등 밑반찬이 너무 달고 면에 간이 배어 있지 않아 국물 맛이 점점 밋밋해진다"는 지적도 나왔다.
7위 광평 — 제주에서 재배한 100% 순메밀
서울 서초구 서관면옥과 울릉에서 내공을 쌓은 김인복 셰프가 2022년 선보인 곳이다. 제주 광평리에서 재배한 100% 순메밀로 제면하되, 일반 메밀과 쓴 메밀을 섞어 향과 식감을 최적화했다. 한 선정위원은 "면의 혁신을 이뤘다"고 평가했다. 메밀면이 단단하게 몸을 말고 있어 자장면 먹듯 젓가락으로 콕콕 쑤셔야 가닥가닥 풀린다. 육수는 암소 살코기로만 우려냈다. 이수양 상무는 냉면을 반쯤 먹은 뒤 다시마 식초를 뿌려 먹길 권했다.
8위 양각도 — 탈북 요리사가 재현한 평양의 맛

9위 을밀대 본점 — 거친 면발과 살얼음의 마력
1971년 시작된 서울 마포구 을밀대는 독자적 스타일로 팬층이 두텁다. 다른 계열과 달리 살얼음 육수를 내놓는다. 살짝 한약재 향이 감도는 진한 육수와 오돌토돌한 면발이 시그니처다. 고 김인주 창업주의 장남이 가업을 잇고 있다. 입소문이 나면서 본점 옆 건물을 하나하나 인수했으나 노포 같은 분위기는 그대로다. "살얼음 낀 육수와 진한 메밀 향이 황금비율로 어우러진 맛" "음주 다음 날 해장엔 을밀대 냉면만한 게 없다"는 평을 받았다. 이 식당을 꼽은 5명 모두가 후순위로 추천해 9위에 머물렀다.
10위 정인면옥 여의도점 — 오류동 계열 잇는 팔방미인
1972년 문을 연 서울 구로구 오류동 평양면옥 계보를 잇는 곳이다. 창업주 셋째 아들이 2012년 부모님 성함 가운데 각각 정 자와 인 자를 따서 경기 광명에 정인면옥을 열었고, 2014년 여의도로 진출했다. "메밀 향, 면의 탄력, 육수 밸런스가 안정적이다" "평양냉면의 표준에 가깝다" "초심자부터 마니아까지 두루 납득할 만한 밸런스를 갖췄다"는 평을 받았다.
순위권 밖 강자들
순위에 들지 못했지만 선정위원들이 언급한 강자들도 있다. 대전 숯골원냉면은 독특한 꿩 육수가 일품이고, 강원 냉면권가는 "동해 여행의 목적"이라는 수식이 붙는다. 대구 부산안면옥은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평양냉면 식당으로 우래옥 뺨치는 고기 향으로 평가받는다. 인천 백령면옥은 까나리 액젓으로 감칠맛을 더하고, 제주 공평옥은 제주 고유 식재료로 빚은 '무 맛의 극치'로 꼽힌다. 서울 내에서는 강남구 우주옥(파스타 같은 면발, 핑크빛 고명), 구로구 평양면옥(1만 원의 소박하지 않은 내공), 마포구 평안도 상원냉면(외조부와 어머니 레시피를 이어받아 2018년 개업), 영등포구 서도냉면(짙은 고기 향, 1만 2000원), 은평구 만포면옥(1972년 개업, 고기 향과 동치미 국물의 조화)이 이름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