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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법 개정 실효성, 기업 거버넌스 인식 개선이 관건
데일리임팩트
최근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결하기 위한 상법 개정안들이 도입됐으나, 규정을 현장에 적용하고 판결하는 주체인 사람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실제 시장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자본시장의 질서를 세우는 것은 정교하게 기록된 법전의 문구가 아니라, 언론 보도 등을 통해 형성된 사회적 공감대와 이를 내면화한 기업 담당자, 변호사, 법관 등의 가치관이라는 주장이다.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한국경제인협회 컨퍼런스센터에서 '전문가 입장에서 본 기업 거버넌스 특강'이 열렸다. 이날 법무법인 클라스한결의 김광준 변호사는 '남아 있는 자본시장 제도 개선 과제'를 주제로 강연에 나섰다.
김 변호사는 "상법 개정을 통해 이사가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는 조항이 들어왔지만, 재계의 우려와 달리 개인적으로는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고 진단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김 변호사는 지배주주가 상속세를 줄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배당을 끊고 IR을 중단해 주가를 억누르는 '주가 누르기'와, 비상장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어 가치를 부풀린 뒤 상장사와 유리한 비율로 합병하는 '터널링' 등을 부의 편법 승계를 위한 핵심 수단으로 지목했다.
그는 이러한 현상의 근본 원인으로 상장사 가치를 오직 시가로만 평가하는 제도의 허점을 지적했다. 또한 비상장 주식의 경우 평가가 자의적으로 가능해, 회계법인이 ‘현금흐름할인법(DCF)’으로 1원 단위까지 숫자를 맞출 수 있는 현실을 비판했다. 아울러 이에 대해 금융당국의 제대로 된 감리 기구조차 없는 감독 사각지대도 문제로 꼽았다.
손해를 본 소액주주를 위한 구제 제도인 '주주대표소송'의 실효성 문제도 제기됐다. 그는 "주주대표소송에서 승소하더라도 배상금은 회사로 귀속될 뿐 주주 개인에게 돌아오지 않는다"며 "소송 비용은 원고 주주가 부담하면서 이익은 모든 주주에게 분산되는 구조상 개인이 소를 제기할 유인이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한국에서 주주대표소송은 28년간 63건에 불과하다. 김 변호사는 증거 확보의 어려움도 강조했다. "내부 정보에 접근할 수 없는 소액주주는 문서제출명령을 신청하더라도 대상 문서를 특정하지 못해 기각되기 일쑤"라며 "법원 부장판사가 직접 '왜 유명무실한 걸 신청하냐'고 반문할 정도"라고 설명했다.
그는 대만의 사례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대만은 증권 거래 수수료로 조성한 기금으로 투자자보호센터를 운영하며 거래소·검찰과의 자료 공유를 제도화해, 단독으로 16년간 95건의 대표소송을 수행했다.
김 변호사는 "배임죄 폐지 논의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증거 확보 수단마저 사라진다면 소액주주 보호는 완전히 공백 상태가 된다"고 경고했다.
이어 '고의 상장폐지'를 통해 법적 리스크 없이 지배력을 강화하는 단계별 수법도 공개됐다. 전체 자산의 1%도 안 되는 미미한 해외 관계사 자료를 고의로 제출하지 않아 '감사 의견 거절'을 유도하는 식인데, 이는 사업보고서 미제출과 달리 '정당한 이유'를 핑계 삼으면 형사처벌을 피하기 쉽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주가가 폭락하면 회사는 저가에 자기 주식을 매입해 대주주의 지배력을 높이며, 결국 자진 상장폐지 대신 비용이 들지 않는 '강제 상장폐지'라는 독소적 유인을 선택하게 된다.
특히 이러한 행위가 사법부의 보수적 판단 아래 방치되고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정보가 즉시 주가에 반영된다는 '효율적 시장 가설'이 유독 상장폐지 국면에서만 무시되고, 법원이 이를 배상 책임이 없는 '간접 손해'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법원이 시장 상식을 외면하고 절차적 적법성만 따지는 사이, 소액주주들이 자본시장에서 강제로 퇴출당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상장폐지 이후 소수주주를 축출하는 방법은 3가지로 설명했다. 명의신탁으로 지분율을 숨겨 행사하는 '지배주주 매도청구권', 폭락한 시가를 기준으로 현금만 주고 내쫓는 '현금교부형 주식교환', 그리고 1000만 대 1로 주식을 합쳐 지분을 1주 미만으로 만드는 '단주 처리'가 동원된다. 김 변호사는 태림페이퍼와 락앤락 사례를 들어, 주주를 헐값에 내쫓은 직후 회사 현금을 배당으로 쏟아내 인수 대출금을 갚는 행태를 설명했다.
그는 이를 우리 법과 법원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애용되는 '합법적 강탈 4단계 종합 모델’로 정의했다. 대출로 우량주를 인수한 뒤 상장폐지 협박으로 주주를 압박하고, 공개매수로 주가를 고착시켜 헐값에 퇴출한 뒤, 지분 100%를 확보한 개인 회사의 현금을 배당으로 인출해 인수 빚을 갚는 '무자본 인수' 구조다. 마지막에는 법원의 "적법하다"는 판결로 면죄부를 받으며 시나리오는 종결된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이러한 부당한 거래가 '적법'의 탈을 쓰고 반복되는 현실을 멈춰야 한다고 지적하며 상법 개정의 정신이 실제 현장에서 작동하려면 자본시장의 파수꾼인 기자들의 역할과 사회적 합의가 절실하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