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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기업지배구조 개선이 핵심
아주경제
공습이 본격화하기 직전까지 한국 증시는 이례적인 상승 흐름을 이어갔다. 인공지능(AI) 열풍에 힘입어 코스피는 3,000선을 돌파한 지 불과 250일 만에 6,000선을 처음 넘어서기도 했다. 그러나 사상 최고치 경신 직후 중동발 리스크가 불거지며 시장 분위기는 빠르게 반전됐다.
그러나 이 같은 단기적인 시장 움직임이 장기적인 펀더멘털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 한국이 투자 잠재력을 온전히 실현하기 위해서는 보다 견고한 기업지배구조가 성장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오랫동안 글로벌 투자자들은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지적해 왔다. 이 표현은 단기적인 시장의 변동성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기업지배구조에 대한 오랜 우려, 특히 지배권(control rights)과 현금흐름권(cash-flow rights) 사이의 괴리를 반영한 표현이다. 많은 한국 기업에서 지배주주는 경제적 지분을 넘어서는 수준의 의사결정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기업 집중 소유 구조는 한국만의 특징은 아니며, 그 자체로 부정적인 것도 아니다. 사실 이러한 구조는 한국의 성공적인 기업들을 일궈내는 밑거름이 되기도 했다. 문제는 지배권과 경제적 이해관계가 명확히 일치하지 않을 때 발생하는 긴장감이다.
투자자들은 한국 기업의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서 자신들이 불공정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실질적인 리스크를 가격에 반영한다. 합병 비율을 둘러싼 분쟁, 기업가치를 이동시키는 인적분할, 주주가치를 희석하는 유상증자, 특수관계자 거래, 승계와 관련된 구조 개편 등이 대표적이다. 시장은 ‘침묵’에 대해서도 할인율을 적용한다. ‘실패가 없는’ 문화를 지향하다 보니 부정적인 정보 공개가 늦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투자자들은 이를 지배구조 취약성과 연결된 리스크로 인식한다. 즉, 가치가 이미 훼손된 뒤에야 문제가 드러날 수 있다는 우려다. 이러한 사례가 흔치 않더라도, 그 가능성 자체만으로도 시장의 신뢰와 기업 가치 평가에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우려를 해소하는 일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한국의 기업 구조는 오랜 기간 가족 중심의 소유 구조 속에서 형성되어 왔다. 이러한 구조를 단번에 해체하는 방식은 경제적·사회적 비용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보다 건설적인 질문은 ‘장기적 소유의 이점을 살리면서 어떻게 소수주주를 보호하고, 시장의 신뢰를 높일 것인가’로 옮겨가야 한다.
이를 위해 필자는 ‘구조(Structure)·규율(Discipline)·소통(Dialogue)’ 프레임워크를 제안하고자 한다. 이 프레임워크는 기업에서 권한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자본 배분 결정이 어떤 방식으로 관리되는지, 그리고 기업이 투자자와 어떻게 소통하는지에 초점을 둔다. 목표는 특정 해외 모델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시장의 경험을 한국 기업의 현실에 맞게 결합하는 데 있다.
북유럽 모델은 투명성 및 강력한 소수주주 보호가 집중 소유와 공존할 수 있으며, 이런 시스템이 글로벌 자본을 끌어들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은 충실의무의 실질적 집행과 적극적인 스튜어드십의 중요성을, 일본은 점진적이고 지속적인 개혁이 어떻게 시장의 기준을 끌어 올릴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들 사례를 관통하는 원칙은 명확하다. 견제와 균형이 작동해 지배권이 주당 가치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행사되고, 투자자들이 기업 성과의 투명성을 신뢰할 수 있을 때 집중 소유 구조 역시 충분히 투자 가능한 대상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점이다.
‘구조(Structure)’는 지배권과 감독 체계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 복잡한 지배 구조를 단순화하고 의사결정 권한을 명확히 하면 불투명성은 줄어든다. 주주총회에서 선출된 이사회는 특정 지배주주만이 아니라 모든 주주를 동등하게 대표해야 한다. 권한과 책임이 분명하고, 실질적인 독립성과 관련 전문성을 갖춘 이사회만이 효과적인 감독 기구로 기능할 수 있다. 이는 소유권이나 의결권을 약화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배구조 내부에 책임성을 내재화하는 것이다. 권한 구조가 투명하고 감독 체계에 대한 신뢰가 확보될수록 외부의 개입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규율(Discipline)’은 특히 자본 배분의 과정에서 지배권이 실제로 어떻게 행사되는지에 대한 것이다. 이는 세 축 가운데서도 가장 어려운 과제다. 지배구조 체계나 투자자 관계(IR)는 시간이 지나며 개선될 수 있지만, 자본 배분 결정은 일단 내려지면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배당, 자사주 매입, 인수·합병(M&A), 인적분할, 구조 개편 등은 인센티브 구조가 실제로 일치하는지를 직접적으로 시험하는 영역이다. 최근 언론보도에서 볼 수 있듯이, 예를 들어 모회사는 지배권을 그대로 유지하는 반면 소수주주만 지분 희석을 떠안게 되는 인적분할 사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러한 결정은 한 번 내려지면 그 결과를 되돌릴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 배분에 대한 규율이 기업지배구조의 신뢰성을 가늠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요소인 것이다.
배당, 재투자, 주요 거래에 대한 명확한 정책은 경영진의 재량을 줄이고 결과의 예측 가능성을 높인다. 이해 상충이 발생하는 거래에서 소수주주 보호를 강화하면 지배권이 경제적 공정성을 압도할 위험을 줄일 수 있다. 현실적으로 이는 일방적인 의사결정에 일정한 제약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선택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는 있지만, 시장은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에 보상을 준다.
집행의 신뢰성 역시 중요하다. 기업지배구조 개혁은 단순히 새로운 규칙을 도입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 규칙이 일관된 결과로 이어지도록 하는 데 의미가 있다. 투자자들은 의도가 아니라 결과에 반응한다. 보호 장치가 우회되거나 선택적으로 적용되면 시장의 신뢰는 약해지고, 밸류에이션 격차 역시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해 상충이 발생하는 거래에서 충실의무의 집행력을 강화하는 것은 가장 효과적인 개혁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다. 합병, 인적분할, 특수관계자 거래는 지배권을 가진 주주의 유인이 주당 가치와 가장 크게 어긋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영역에서 명확한 기준과 일관된 집행이 이루어진다면 투자자들의 우려를 직접적으로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소통(Dialogue)’은 정보의 비대칭성을 줄이는 통로다. 질 높은 공시와 정기적이고 구조화된 투자자 소통은 정보 격차를 줄인다. 여기서 말하는 소통은 행동주의 투자자에게 경영권을 넘기거나 단기 성과에만 집중하자는 의미가 아니다. 기업의 주요 의사결정이 명확히 설명되고, 정해진 절차를 통해 검증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뜻한다. 시간이 지나며 이러한 일관된 소통은 신뢰를 쌓는다. 기업지배구조 체계가 투명하고 예측 가능할수록, 투자자들은 장기 전략을 더욱 기꺼이 지지하게 된다.
종합하면, 구조·규율·소통 프레임워크는 함께 작동할 때 지배권을 주당 가치와 정합적으로 연결하는 기업지배구조 체계를 형성한다. 이는 한국이 집중 소유 모델을 해체하지 않고도 기업지배구조를 강화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 지배권 자체는 유지하되, 보다 명확한 구조와 강한 규율, 열린 소통 속에서 작동하게 만드는 것이다. 실무적으로 기업지배구조의 질은 점점 더 전략적 유연성을 결정짓는 요소가 되고 있다. 자본 배분 규율과 신뢰할 수 있는 감독 체계를 보여주는 기업일수록 인수·합병이나 전략적 파트너십, 장기 투자 등을 추진할 때 더 큰 자유를 누리게 된다. 투자자들이 기업의 의사결정 방식에 대해 신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목표는 기업의 주인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핵심은 지배권을 보다 투명하고 책임 있게, 그리고 경제적 소유권과 일치하는 방향으로 행사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시장은 재량을 제약하고 감독을 강화하며 소수주주를 보호하는 기업지배구조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 변화를 이루기 위해 반드시 급격한 구조 개편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일본의 사례에서 보듯이, 점진적이고 지속적인 개혁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대 수준을 높이고 신뢰를 구축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집행이 일관되고 자본 배분에 대한 규율이 확립된다면, 집중 소유 구조 역시 높은 투자자 신뢰와 충분히 공존할 수 있다.
글로벌 자본시장의 변동성과 불확실성이 커진 지금이 바로 기회가 될 수 있다. 글로벌 투자자들은 대안을 찾고 있다. 한국 시장에 대한 관심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우호적인 시장 환경이나 특정 산업의 모멘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기업지배구조 강화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만성적인 우려에서 과거의 교훈으로 바꾸고, 더욱 견고하고 경쟁력 있으며 투자자들이 신뢰하는 시장으로 도약하는 발판이 될 것이다. 또한, 개별 기업 차원에서도 선제적으로 기업지배구조의 신뢰성을 강화한다면, 글로벌 자본과 전략적 파트너십에 더 빠르게 접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필자 소개
레달 창립자 겸 CEO는 이전에 McKinsey & Company와 Accenture에서 파트너로 근무했으며, 과학, 경영 컨설팅, 벤처캐피털, 스타트업, 그리고 기업 운영 전반에 걸쳐 20년 이상의 폭넓은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 University of California, Santa Barbara에서 경제학 석사(M.A.)와 전기공학 박사(Ph.D.) 학위를 취득했으며, Helsinki University of Technology에서 전기공학 석사(M.Sc.) 학위를 받았다. 현재 Yonsei University Graduate School of Business에서 객원교수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