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 읽음
추경과 금리 인상 사이 정책 충돌, 시장 불확실성 고조
IT조선
0
돈은 약이 될 수도 있지만, 과하면 독이 된다. 아르헨티나가 이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경기 침체를 막겠다며 재정을 반복적으로 풀고, 부족한 돈은 중앙은행이 메웠다. 그 결과 통화량은 급격히 늘었고, 물가는 통제 불능 수준으로 치솟았다. 결국 화폐 가치는 바닥으로 떨어지고 국가 경제는 망가졌다.

한국 경제가 같은 길을 간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재정이 반복적으로 확대될 때 시장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는 이미 여러 번 확인된 사실이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돈이 풀리면 단기적으로는 숨통이 트이지만 그 뒤에는 금리와 물가라는 대가가 따라붙는다.

정부가 이른바 ‘벚꽃 추경’을 준비하고 있다. 고유가와 대외 불확실성 속에서 소상공인과 취약계층을 지원하고, 경기의 하방을 막겠다는 취지다. 재정은 가장 빠르고 직접적인 처방이다. 돈을 풀면 당장 체감 경기는 살아난다.

하지만 문제는 ‘타이밍’이다. 현재 경제는 단순한 침체 국면이라기보다, 물가와 환율 불안이 동시에 남아 있는 상태다. 중동 전쟁이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로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1500원을 넘나들고 있다. 이런 상황이 장기화하면 결국 생산자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수입 기업이 타격을 입는 것은 불가피하다. 여기에 에너지 수급 문제까지 겹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하는 모습이다.

이런 상황에서 돈을 풀면 시장은 경기 부양보다 인플레이션 가능성을 먼저 반영한다. 과거에도 물가 상승 압력이 높은 시기에 대규모 재정 지출이 더해지면서 물가와 환율이 동시에 불안해진 사례가 여럿 있었다.

이런 상황에 매파 성향을 가진 신현송 국제결제은행(BIS) 통화경제국장이 한국은행 총재가 된다고 한다. 한은은 ‘물가 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한다. 물가 안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금리를 올려 대응한다. ‘인플레 파이터’라는 별명은 한국은행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표현이다.

물가 안정을 다시 말하면 시중의 돈을 줄이겠다는 의미다. 반면 추경은 돈을 풀어 경기를 떠받치는 정책이다. 한쪽은 가속 페달을 밟고, 다른 한쪽은 브레이크를 밟는 구조다. 정책 충돌은 처음부터 예고된 셈이다.

문제는 이 두 정책이 동시에 움직일 때다. 정부는 적자 국채 발행없이 반도체 호황에 기댄 법인세 초과분과 증시 활성화로 늘어난 증권거래세 등을 재원으로 마련하겠다고 호언하고 있다. 하지만 기대 인플레이션이 이미 시장에 반영되면서 금리 부담이 턱밑까지 차 오른 상황이다. 여기에 중앙은행까지 기준금리 인상에 나서면 상승 압력은 더 커진다. 시장금리는 이중으로 뛰게 된다.

그 부담은 고스란히 민간으로 넘어간다. 가계는 대출 이자가 늘고, 기업은 자금 조달 비용이 올라간다. 특히 신용도가 낮은 기업일수록 시장에서 밀려난다. 돈을 풀어 경기를 살리겠다는 정책이 오히려 돈의 흐름을 더 막는 역설적인 상황이 나타날 수 있다.

재정은 경기 대응을, 통화정책은 물가 안정을 맡는다. 두 축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면 재정·통화 정책의 효과는 줄어든다. 새로 들어설 한국은행 총재가 처음 참여하는 5월 금융통화위원회에 벌써부터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엇갈린 정책 신호는 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운다.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투자자들은 위험 프리미엄을 더 요구한다. 그 결과 채권금리는 더 크게 흔들리고 환율도 불안해진다. 새 총재는 한국은행이 정부의 ‘남대문 출장소’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도, 정책 간 불필요한 파열음을 최소화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출발하는 셈이다.

벚꽃이 피는 계절, 돈도 함께 풀린다. 하지만 그 돈이 시장에 따뜻한 봄바람이 될지, 아니면 금리와 물가를 자극하는 돌풍이 될지는 미지수다. 다만 지금의 선택이 앞으로의 금리와 경제의 방향을 좌우할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한재희 기자

onej@chosunbiz.com
0 / 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