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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 위봉산성, 어진 보호한 석문과 위봉폭포의 정취
위키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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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무게를 견디며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도 깊은 울림을 전한다. 전북 완주의 깊은 산세 속에 자리한 사적 제471호 위봉산성은 조선 숙종 때 축조된 산성으로, 당시 왕실의 권위와 안녕을 상징하는 중요한 장소였다. 특히 유사시 전주 경기전에 모셔진 태조 이성계의 어진과 조경묘의 위패를 안전하게 옮기기 위해 세워졌다.
실제로 이곳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 역할을 다했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 당시 전주가 함락되자 태조의 어진과 위패를 이곳으로 옮겨 화를 면했다고 한다. 한때 성안에는 이를 봉안하기 위한 소규모 궁궐인 행궁이 있었으나, 오랜 세월이 흐르며 건물은 사라지고 지금은 터만 남아 과거의 흔적을 짐작하게 한다. 동·서·북쪽에 세워졌던 세 개의 문 가운데 현재는 전주로 통하는 서쪽의 홍예(석문)만 온전하게 남아 성곽의 입구를 지키고 있다. 무지개 모양의 석문 위로 이끼 낀 돌들이 촘촘히 놓인 모습은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운 미감을 자아낸다.
고풍스러운 석문은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2019년 화보를 촬영한 장소로 알려지며 더욱 주목받았다. 멤버들이 다녀간 석문 주변은 방문객들의 촬영 명소가 됐다. 돌 하나하나에 밴 세월의 흔적을 배경으로 셔터를 누르다 보면, 수백 년의 역사와 현대가 교차하는 이색적인 정취를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산성의 정취를 즐긴 뒤에는 성 안쪽에 자리한 위봉폭포로 발걸음을 옮겨볼 만하다. 완주 9경 중 하나로 꼽히는 위봉폭포는 60m 높이에서 쏟아지는 시원한 물줄기가 인상적인 명소다. 2단으로 꺾여 내려오는 폭포수는 주변의 기암괴석과 울창한 숲과 어우러져 한 폭의 산수화를 떠올리게 하는 장관을 이룬다. 폭포 아래로 이어지는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물소리와 숲의 향기가 어우러져 깊은 평온을 안겨준다. 성곽의 단단함과 폭포의 역동적인 유연함이 공존하는 이 공간은 자연과 역사가 빚어낸 조화로움을 보여준다.
위봉산성은 별도의 입장료가 없고 상시 개방돼 사계절의 변화를 언제든 느낄 수 있다. 봄에는 연둣빛 새순이 성벽을 감싸고, 여름에는 짙은 녹음이 청량함을 더한다. 가을에는 붉게 물든 단풍이 돌담과 어우러지며, 겨울에는 흰 눈이 내려앉은 성벽과 석문이 수묵화 같은 고요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계절마다 다른 풍경을 보여주는 이곳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조선의 숨결을 느껴보는 경험은 일상에 특별한 여운을 더해준다.

위봉산성 / 구글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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