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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권력의 '증거'는?... 조전혁의 촌철
최보식의언론
과거의 정치가 최소한 ‘염치’라는 외피라도 둘러 국민의 눈치를 살폈다면, 2026년 오늘의 정치는 그 껍데기마저 거추장스럽다는 듯 내팽개쳤다. 최근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들을 보면, 이 땅의 정치 도덕은 무너진 수준을 넘어 아예 증발해버린 듯하다. 바야흐로 ‘부끄러움이 없는 것’이 곧 ‘권력의 증거’가 되는 야만의 시대다.
이재명 정권 출범 이후, 이른바 ‘여권 프리미엄’은 법치와 상식의 경계를 허무는 무소불위의 면죄부가 되었다. 뇌물 수수 혐의로 재판을 받던 인사가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검찰이 기다렸다는 듯 상고를 포기하는 풍경은 사법 정의가 권력의 입맛에 따라 어떻게 곡해될 수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범죄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는 대통령의 ‘분신’은 국회 한복판에서 보란 듯이 출판기념회를 열어 세를 과시한다. 불과 두달여 전 인사 청탁 논란으로 사퇴했던 대통령실 전비서관은 아무런 자숙의 과정 없이 당의 ‘입’으로 화려하게 복귀한다.
이들에게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기이한 점은 ‘부끄러움’의 부재다. 공자는 일찍이 수오지심(羞惡之心), 즉 자신의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옳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이 도덕의 출발점이라 설파했다.
그러나 지금의 정치인들에게 수오지심은 정치적 생명을 단축시키는 ‘나약함’일 뿐이다. 오히려 자신의 허물을 ‘정치 탄압’이라는 갑옷으로 위장하고, 상식을 지키려는 국민의 목소리를 ‘적폐’로 몰아세우는 뻔뻔함이 새로운 정치 표준(Standard)으로 자리 잡았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정치는 필연적으로 '아귀다툼'으로 변질된다. 옳고 그름에 대한 최소한의 기준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은 오직 ‘내 편이냐 아니냐’라는 진영 논리와 ‘이겼느냐 졌느냐’라는 권력 의지뿐이다.
이런 토양 위에서 정치는 더 이상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는 예술이 아니라, 타인의 권리를 약탈하고 자신의 허물을 세탁하는 기술로 전락한다. 도덕이 거세된 정치는 맹수들이 우글거리는 정글의 질서와 무엇이 다른가.
현재 대한민국 국회와 정치 무대는 법적인 유·무죄를 다투는 곳이 아니라, 누가 더 ‘간 큰’ 행동을 통해 사법부를 압박하고 지지층을 결집하느냐를 겨루는 쇼윈도가 되었다.
대통령의 측근이라는 이유로, 권력의 핵심과 가깝다는 이유로 법의 심판대가 정치적 선전장으로 변질되는 것을 목도하는 평범한 소시민들은 절망한다. "권력만 있으면 죄도 부끄러움도 사라진다"는 메시지가 사회의 기본 원칙이 될 때, 국가의 근간인 법치주의는 뿌리부터 썩어 들어간다.
이제라도 우리 정치가 회복해야 할 것은 거창한 담론이나 지엽적인 정책 이전에,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수오지심’이다. 자신의 행동이 부끄러운 줄 알고, 그 부끄러움 때문에 고개를 숙일 줄 아는 정치인이 한 명이라도 더 필요한 시점이다.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은 결코 나약함이 아니다. 그것은 타인과 공감하고 법의 권위를 존중하며, 공동체의 신뢰를 유지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이들이 주도하는 ‘만행의 시대’를 끝내야 한다. 우리 사회가 다시 정상적인 민주 국가로 나아가기 위해, 정치인들이 거울 앞에서 자신의 수오지심을 조용히 되묻기를 바란다.
부끄러움을 아는 정치가 시작될때, 비로소 ‘사람의 정치’도 시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기만적인 정치 를 무너뜨릴 힘은 오직 진실을 직시할 수 있는 안목을 갖추고, 그 진실을 수호하기 위해 기꺼이 용기를 내어 연대하는 ‘교양 시민’들의 어깨 위에 놓여있다.
비겁한 침묵을 깨고 진실의 횃불을 든 깨어 있는 시민들이 하나로 뭉칠 때, 비로소 부끄러움을 아는 정치가 회복되고 무너진 정치 도덕도 바로 설 수 있다.
#수오지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