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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피격’ 항소를 둘러싼 공방… 진실보다 정쟁화
시사위크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을 둘러싼 후폭풍이 다시 정치권을 뒤덮고 있다. 지난해 12월 1심에서 문재인 정부 안보 라인 인사가 전원 무죄를 선고받은 이후, 항소 기한(3일 0시)을 앞두고 상황은 더욱 팽팽해졌다. 이재명 대통령과 김민석 국무총리를 비롯해 여야 지도부, 유족과 검찰까지 서로 다른 요구를 내놓으면서 갈등의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 항소 여부를 둘러싸고 정치권의 이해와 평가가 엇갈리면서 이번 판단은 정치적 정당성과 국가 책임을 가르는 선택의 문제로 자리 잡은 모양새다.
◇ ‘조작 기소’ vs ‘항소 포기 외압’, 갈등 구조 고착화
2020년 9월 서해에서 해양수산부 공무원이던 고(故) 이대준 씨가 북한군에 피살되고 시신이 소각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문재인 정부는 당시 이씨가 자진 월북을 시도하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결론 내리고 이를 공식 발표했다. 그러나 정권 교체 이후 윤석열 정부는 “월북으로 단정할 근거가 없다”며 기존 판단을 뒤집었다. 이 과정에서 정부가 당시 상황과 대응 과정을 제대로 공개했는지, 월북 판단이 정당했는지를 둘러싼 논쟁이 본격화됐다.
이 논쟁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수사 국면으로 이어졌다. 국가정보원과 감사원이 당시 대응 과정의 위법 가능성을 제기했고, 이를 토대로 검찰은 문재인 정부 안보 라인이 첩보를 숨기고 ‘월북’ 발표를 무리하게 밀어붙였다고 판단해 기소에 나섰다. 그러나 법원은 형사처벌이 가능할 정도의 고의와 위법성이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지난해 12월 피고인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의 무죄 판단 이후 정치권의 움직임도 급격히 달아졌다. 특히 정권 핵심 인사들의 공개 발언이 이어지면서 논란의 불씨가 더욱 커졌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지난해 12월 30일 국무회의에서 “감찰권 남용과 무리한 법리 적용 등 사실상 조작 기소로 볼 수 있는 잘못이 확인됐다면 정리할 필요가 있다”며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고 밝혔다.

여권의 발언 이후 야권은 즉각 반발에 나섰다. 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대통령과 총리가 대놓고 항소 포기를 주문하고 있다”며 항소를 통해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같은 날 당 논평에서도 비판이 이어졌다. 최은석 원내수석대변인은 “항소 포기 결정이 반복되면 국가는 국민의 권리를 지키지 못했다”고 했고,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검찰은 정권이 아니라 국민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권이 ‘조작 기소 프레임’과 ‘항소 포기 외압 프레임’을 각각 앞세우며 정면 충돌 구도가 굳어지는 모습이다.
같은 날 더불어민주당도 강경한 입장을 내놨다. 민주당 ‘정치검찰 조작기소대응특별위원회’는 입장문에서 이번 사건을 “윤석열 정권이 전임 정부 안보 책임자들을 정치적으로 음해해 기소한 사건”이라고 규정하며 검찰이 항소를 포기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재판부가 은폐와 ‘월북몰이’ 의혹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며 “조작 기소의 전말이 명백해졌는데도 검찰이 여전히 진실을 외면한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항소 검토보다 당시 수사를 지휘했던 검사들에 대한 감찰과 조사가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찰 내부에서도 단일한 결론에 이르지 못한 기류가 감지된다. 수사·공판팀은 피해자 입장과 3심제 취지 등을 고려해 상급심 판단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지휘라인에서는 판결문을 지속적으로 분석하며 정치적 파장과 제도적 부담까지 고려하는 모습이 포착된다. 박철우 서울중앙지검장이 항소 의견이 담긴 보고서를 보완 지시 뒤 “추가 보고는 필요 없다”고 밝힌 정황 등이 전해지면서 몇 개월 전 ‘대장동 항소 포기’ 때와 유사한 내부 혼선이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사건의 출발점과 당시 판단을 둘러싼 쟁점은 여전히 정리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무죄 판결에서 해경 발표와 정부 판단 과정에 위법한 강요나 조작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또 고도의 안보·정책 판단을 형사적 책임으로 끌어들이는 데는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 판결이 모든 사회적 질문을 정리해 준 것은 아니라는 시각도 공존한다. 국가가 위기에 처한 국민을 어디까지 보호하고 설명해야 하는지 그리고 관련 의사결정 과정이 얼마나 투명했는지에 대한 문제 제기는 여전히 남아 있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사건의 핵심이 단순히 ‘항소하느냐, 하지 않느냐’라는 선택에 있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항소 결정은 원칙적으로 법리 검토와 피해자 의사, 공익 판단 등이 종합돼 내려져야 하지만 이번 사건은 여야 정치 공방과 정권 차원의 메시지가 동시에 작동하는 드문 사례라는 지적이다. 때문에 어떤 결정이 내려지더라도 정치적 해석과 책임 공방이 뒤따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법조계 일각에서 제기된다.
항소를 둘러싼 정치적 공방은 결국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함이다. 현재까지의 판단만으로는 당시 정부의 월북 결론이 타당했는지, 국가 책임의 기준을 어디에 둘 것인지 등이 여전히 논쟁으로 남아 있다. 정권이 바뀌며 해석은 뒤집혔지만, 법원은 형사처벌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그렇다고 사실관계가 모두 정리됐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남은 공백 속에서 정치적 해석과 사회적 갈등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사건의 진실을 정치 논쟁이 아닌 제도적 과정에서 어떻게 다룰지 역시 앞으로의 과제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