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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 한줌 /나희덕
이런 얘기를 들었어. 엄마가 깜박 잠이
든 사이 아기는 어떻게 올라갔는지
난간 위에서 놀고 있었대. 아기가 모르
는 난간 밖은 허공이었지
잠에서 깨어난 엄마는 난간의 아기를 보
고 얼마나 놀랐는지 이름을 부르려
입이 떨어지지 않았어. 아가. 조금만, 조
금만 기다려, 엄마는 숨을 죽이며
아기에게로 한 걸음 다가갔어. 그리고는
온몸의 힘을 모아 아기를 끌어안았어
그런데 아기를 향해 내뻗은 두 손에 잡힌
것은 허공
그 순간 엄마는 숨이 멈춰버렸어. 다항
히 아기는 엄마 쪽으로 굴러 떨어졌지
죽은 엄마는 꿈에서 깬 듯 우는 아기를 인
고 병원으로 달렸어
아기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말고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울음을 그치고 아기는 잠이 들었어. 죽은 엄마는
아기를 안고 집으로 돌아와 아랫목에 눕
혔어. 아기를
그옆에 누운 엄마는 그후로 다시는 깨어
나지
죽은 엄마는 그제서야 마음놓고 죽을 수
있었던 거야.
이건 그냥 만들어낸 얘기가 아닐지 몰
라.
버스를 타고 돌아오면서 나는 비어 있는
손바닥을 가만히 내려다보았어.
텅비어 있을 때에도 그것은 꼭차있곤
했지. 수없이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그날밤 참으로 많은 걸 놓아주었어. 허
공한 한줌까지도 허공에 돌려주려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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