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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근무 짧다’며 백혈병 소방관 요양급여 거부… 법원, 취소 판결
조선비즈
인사혁신처가 백혈병에 걸린 소방관에게 상당 기간 화재 현장이 아닌 부서장, 소방서장으로 근무했다며 요양급여를 지급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라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8단독(판사 문지용)은 지난 10월 22일 소방공무원 A씨에 대해 인사혁신처가 내린 공무상 요양 불승인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고 14일 밝혔다.
A씨는 1995년 소방공무원으로 임용돼 근무하다가 2021년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이후 공무원연금공단에 공무상 요양급여를 신청했다.
공무원 요양급여는 공무 수행 중 얻은 부상이나 질병으로 요양·재활이 필요한 경우 진단비와 약제비, 수술비 등을 지원하는 제도다. 공무원재해보상법에 따라 인사혁신처가 공무원재해보상심의회 심의를 거쳐 승인 여부를 결정한다.
그러나 인사혁신처는 2023년 3월 20일 A씨의 신청을 불승인했다. A씨가 소방공무원으로 임용 초기 2년 2개월 동안만 화재 진압·구조 업무를 했고, 그로부터 22년이 지난 뒤 백혈병이 발병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A씨는 서울행정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A씨는 소방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개인보호장구가 충분히 지급되지 않은 상태에서 화재 현장에 반복적으로 출동해 벤젠, 포름알데히드 등 유해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됐다고 주장했다.
또 임용 초기 이후에도 화재 진압 부서의 장, 당직근무 책임자, 소방서장으로 근무하며 화재현장을 지휘했고, 이 과정에서 일선 소방대원과 마찬가지로 유해물질에 노출됐다고 했다. 가족력도 없는 만큼 공무와 백혈병 발병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인사혁신처는 “당직근무 중 화재가 발생할 경우 일선 출동부서와 본서 현장지휘대가 출동하는 것이 일반적이어서, 소방서장 직무를 대리하는 당직 책임자가 직접 현장에 출동해 지휘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A씨가 근무한 B소방본부는 “당직 책임관은 모든 현장에 출동해 현장을 지휘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인사혁신처는 또 A씨가 출동부서장으로 근무할 당시 주로 행정업무를 수행했다고 주장했으나, 동료 소방공무원들은 A씨가 실제로 화재 현장에 출동했다고 진술했다. B 소방본부는 “출동부서장은 모든 화재에 출동해야 한다”고 확인했다.
B소방본부 집계에 따르면, A씨는 근무 기간 동안 총 1431건의 화재 현장에 출동했다. 여기에는 당직 책임관 420건, 소방서장으로 69건 출동한 사례도 포함됐다.
행정법원은 “A씨가 26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적어도 수백 건에 이르는 화재 현장에 출동해 화재 진압·구조 활동을 수행하면서 벤젠 등의 유해물질에 노출됐다고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석유화학제품이 연소될 경우 벤젠이 방출될 가능성이 높고, 소방공무원이 화재 현장에서 벤젠에 노출되면 백혈병이 발병할 수 있다”며 인사혁신처의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