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읽음
KBS청주 해고 작가 “오요안나 님이 겪은 고립, 남일 아냐”


K작가는 2011년부터 청주KBS에서 라디오 시사·음악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14년차였던 지난해 11월, 방송 폐지를 이유로 ‘계약 종료’ 통보를 받았다. K작가는 자신이 ‘무늬만 프리랜서’로 일하다 해고 됐다며 부당해고 구제신청에 나섰고, 지난 2월 충북지방노동위원회가 그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그는 회사를 나온 지 7개월이 넘도록 복직하지 못하고 있다. 종전 ‘지노위 결과를 존중하겠다’던 KBS가 입장을 바꿔 불복했기 때문이다. 그는 오는 20일 중앙노동위원회의 재심을 앞두고 있다.
‘알음알음 좁은’ 방송계에서 재취업이 어려워지고,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판단 받은 뒤에도 방송사의 불복과 ‘꼼수’ 대응이 이어지는 현실은 법적 대응에 나설 결심을 어렵게 한다. 이런 환경에서 방송계 ‘무늬만 프리랜서’들은 쉬운 해고 표적이 돼왔다. 그럼에도 K작가는 KBS전주총국 해고 작가의 법적 다툼을 통해 용기를 얻었고, 고 오요안나 MBC 기상캐스터의 사망을 접한 뒤 “남일 같지 않았다”며 공론화를 결심했다. 이날 기자회견을 마친 K작가와의 인터뷰를 일문일답 형태로 정리했다.

“민주노총 충북지역본부에서 2025년 충북 차별철폐대행진 기간에 기자회견을 하는 건 어떨지 의견을 줬고, 여러 단체들의 도움으로 용기 냈다. 특히 최근 MBC 오요안나 님의 일을 보며 너무 마음이 아팠다. 남의 일 같지 않았다. 방송국에 작가뿐 아니라 많은 방송 노동자들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 놓여있는지 다시 깨달았다. 프리랜서들은 어려운 일이 있어도 도움 요청할 곳이 없다는 생각에 고립되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그랬다. 제 사건 해결을 위해서뿐 아니라 일단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많은 작가들이 이런 일을 당했을 때 용기를 냈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또 이번에 용기를 낸 건 KBS전주총국 방송작가 (법적 다툼에 나섰던) 사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 주변 방송작가 중에서도 부당해고를 겪은 이들이 있나.
“몇몇 있다. 모두 아무 말도 않고 나왔다. 특히 청주뿐 아니라 KBS든 MBC든 지역방송국들은 비슷한 시스템이기에, 전국에 있을 거다. 저만 해도 20대 후반 KBS의 다른 지역국에서 일하다 해고를 겪었는데, 너무 어려서 문제 제기를 하지 못했다. 노동법도 잘 모르는 데다가 ‘과연 이길 수 있을까? 안 될 거야’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 법적 다툼에 나선 방송노동자들 사례를 접한 적이 있나.
“거의 다 그냥 그만두고 다른 데로 간다. 이런 (문제 제기) 방법이 있다는 것조차 몇년 전까지는 다들 몰랐지 않나. KBS 청주방송총국은 지난 2020년 CJB청주방송에서 이재학 PD가 돌아가신 사건이 알려진 뒤에야 저와 프리랜서 계약서를 처음 썼을 정도로, 무늬만 프리랜서 계약 문제는 알려지지 않았었다. 현재도 작가들이 문제 삼는 과정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여럿이 법적 다툼을 하고 있는 제게 구제신청하면 어떻게 되는지 물어온다. KBS전주총국 시사 작가와 MBC 보도국 방송작가 등 사례가 조금씩 생기면서 하나둘씩 문제 제기하는 분위기다.”
- 20일 중앙노동위원회의 부당해고 사건 심문회의 재심이 예정됐다.
“좋은 결과가 있으면 좋겠다. 제가 했던 일을 자세히 밝히면 되지 않을까.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출근해 원고 작성과 섭외뿐 아니라 장비 세팅, 방송 녹음과 편집, 출연자 관리, 상품권 내역 작성 및 발송, 출연료 내역서 작성, 방송 전 음악 다운로드, 다음 날 큐시트 정리 및 서무 전달, 국장 결재, 통제구역 출입자 기록 관리, 주간 제작 일지 작성 등 제작과 행정 전반을 도맡았다. 창작자로서 PD와 대등한 위치에서 협업한 것이 아니라, 정해진 틀 안에서 회사의 지시에 따라 일했고, 현재도 많은 작가가 이런 방식으로 열정을 바쳐 일하고 있다.”

“지역의 작가들은 PD나 FD 역할 등 다른 업무도 수행한다. 작가가 할 일이 맞는지, 아닌지 명확히 나누기 어렵다. 그만큼 직원처럼, 시키는 대로 일했다. 제가 근무한 KBS청주총국에선 아나운서가 PD 역할을 겸한다. PD 역할의 상당 부분은 사실상 작가가 수행한다. 그분들도 나빠서가 아니라, 예전부터 내려오던 시스템에 따르는 것이다. 작가들도 원래 이렇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런 구조 속에서 일하다 작가들은 갑작스럽게 해고를 당해 방송국을 떠나야 한다. 13년이라는 세월이 부정 당했다는 생각에 깊은 상실감을 겪었다. 침묵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지금 나서지 않으면 또 다른 누군가가 저와 같은 일을 겪게 될지도 모른다.”
- 추가로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
“라디오 방송에서는 몇 초간의 정적만 흘러도 방송 사고로 간주된다. 단 한순간의 공백도 허용되지 않는 방송 현장에서 1분1초가 얼마나 중요한지 몸소 체감하며 일했다. 그런 저에게 해고를 당한 뒤 지난 7개월은 결코 짧지 않았다. 헛된 시간이라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방송작가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고 변화하는 출발점이 된다면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시간이라 믿고 싶다. 그런 마음으로 외롭고 힘든 시간을 버티고 있다.”